신념과 체념.
둘은 반대인가? 아니다, 念이라는 공통을 가지고 있다.
체념에는, '아직 버리지 못한 念'의 전제가 반드시 끝까지 깔려 있다.
평정심.
법정은, '평정심은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는 것'이라고 했다.
저 '판단'은 무엇에 대한 판단인가?
옮고 그른 것에 대한? 아님 소신있는 것과 비굴한 것에 대한? 혹시 나와 같거나 다른 것에 대한?
판단하지 않는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'판단'을 전제로 끝까지 깔아놓은 것 아닌가?
평정심은 체념과 무엇이 다른가?
어쨌거나,
念과 판단은,
늘 나를 좇아오는 문제다. 개인적으로나, 사회적으로나.
그럼 나는 왜 아직도 그것에 출렁이는가? 그건 왜 그리 단단하고 집요한건가?
들여다보면, 그것보다 더 깊은 뿌리는 있다.
존재간의 소통과 이해, 진실한 것, 사랑에 대한 희미하고 깊은 갈망-무조건 옳고 선해보이는 것.
이 '갈망'은 매우 선하고, 매우 연약한 원인같아 보이지만
이것이 언제나 '단단한 신념이나 판단'의 결과가 된다, 신념과 체념처럼 결코 단독으로는 행동하지 않는다.
나는 '이 갈망'을 IDEAL한 동력이라 생각한다. 그것이 가장 진실된 것이다-는,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원인이
나는 '이 신념'이 소신이고 원칙이라고 여긴다. 그러니 나를 '체념'시키지 말라-는, 아주 사회적인 결과가 되어간다.
그러니, 마찬가지다.
들여다보면.. 마찬가지다.
내가 지금 이 곳에 적을 두고, 이 업을 하고 있는 의미는, 이걸 배우기 위해서인 것 같다.
체념과는 다른, 뭔가 더 본질적인 깨달음이, 지혜가 필요하다.
이 모든 현상과 현실이, 어쩌면 <엄석대의 교실>처럼, 소설적이고 연극적으로
이것을 적시해주기 위한 오픈런의 메타포일지도 모른다.
시공이 흘러가는데도 계속 어떤 혼란이 반복된다면-하나의 단순한 깨달음을 끄집어 낼 때다.
그걸 가져야 할 때다.
송도- 처음 온 여행지의 황량하고 비현실적인 풍경은,
뭔가를 끄집어내기에 딱 적합하다.
둘은 반대인가? 아니다, 念이라는 공통을 가지고 있다.
체념에는, '아직 버리지 못한 念'의 전제가 반드시 끝까지 깔려 있다.
평정심.
법정은, '평정심은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는 것'이라고 했다.
저 '판단'은 무엇에 대한 판단인가?
옮고 그른 것에 대한? 아님 소신있는 것과 비굴한 것에 대한? 혹시 나와 같거나 다른 것에 대한?
판단하지 않는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'판단'을 전제로 끝까지 깔아놓은 것 아닌가?
평정심은 체념과 무엇이 다른가?
어쨌거나,
念과 판단은,
늘 나를 좇아오는 문제다. 개인적으로나, 사회적으로나.
그럼 나는 왜 아직도 그것에 출렁이는가? 그건 왜 그리 단단하고 집요한건가?
들여다보면, 그것보다 더 깊은 뿌리는 있다.
존재간의 소통과 이해, 진실한 것, 사랑에 대한 희미하고 깊은 갈망-무조건 옳고 선해보이는 것.
이 '갈망'은 매우 선하고, 매우 연약한 원인같아 보이지만
이것이 언제나 '단단한 신념이나 판단'의 결과가 된다, 신념과 체념처럼 결코 단독으로는 행동하지 않는다.
나는 '이 갈망'을 IDEAL한 동력이라 생각한다. 그것이 가장 진실된 것이다-는,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원인이
나는 '이 신념'이 소신이고 원칙이라고 여긴다. 그러니 나를 '체념'시키지 말라-는, 아주 사회적인 결과가 되어간다.
그러니, 마찬가지다.
들여다보면.. 마찬가지다.
내가 지금 이 곳에 적을 두고, 이 업을 하고 있는 의미는, 이걸 배우기 위해서인 것 같다.
체념과는 다른, 뭔가 더 본질적인 깨달음이, 지혜가 필요하다.
이 모든 현상과 현실이, 어쩌면 <엄석대의 교실>처럼, 소설적이고 연극적으로
이것을 적시해주기 위한 오픈런의 메타포일지도 모른다.
시공이 흘러가는데도 계속 어떤 혼란이 반복된다면-하나의 단순한 깨달음을 끄집어 낼 때다.
그걸 가져야 할 때다.
송도- 처음 온 여행지의 황량하고 비현실적인 풍경은,
뭔가를 끄집어내기에 딱 적합하다.




